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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biyo 2016. 3. 31. 22:34









  오랜만에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간단히 씻고 나와 집 근처에 있는 서강대교 위를 걸었다. 아침부터 햇볕은 따뜻했고 강물은 햇살을 머금고 반짝였다. 서강대교 끝을 찍고 다시 되돌아 가는 길에  대교 아래로 가로질러 나 있는 다리의 다리인 교각(橋脚) 에 물 그림자가 그물망 같은 무늬를 만들어 내며 위 아래로 일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물 그림자가 개구쟁이처럼 눈웃음을 지으면서 장난스럽게 단단한 철근 콘크리트 교각을 간지럽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리 난간에 팔을 포개어 기대고 서서 일렁이는 물 그림자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보니 머릿속에 교각도 아무렇지 않은 체 하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습이 인간과 죽음의 관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죽음은 단단하고 필연적 이기에 인간에게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인간은 웃음짓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분노 하기도 하며, 또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뒹굴며 뒤 섞이면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에야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누르고 있는 죽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죽음의 존재를 잠시동안 잊을 수 있다. 그런 순간들, 그것이 바로 물 그림자처럼 죽음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간지럽히는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는 내내 서강대교 위를 걸었을 때 보았던 그 장면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일렁였다. 특히 내 머릿속의 물 그림자는 삶이 얼마남지 않은 주인공 정원(한석규 분)이 여동생과 함께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자신의 첫사랑인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진하게 일렁였다. 아직도 지원을 좋아 하냐고 묻는 여동생의 말에 대답 대신 수박씨를 뱉는 정원의 모습, 그리고 이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수박씨를 -우 푸-’ 멀리 뱉으며 장난치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동시에 수박씨를 뱉고 웃는 장면에서 둘은 잠시 죽음을 잊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죽음은 그들에게 밀려오고 여동생은 울음을 참는다. 일렁이던 물 그림자는 잠시 물러난다.

  이처럼, 죽음을 바로 앞에 둔 정원의 삶에는 물 그림자가 일렁였다 다시 물러났다 하면서 담담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죽음의 날개죽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영화의 마자막에서 정원이 죽은 후 <초원 사진관> 을 찾은 다림(심은하 분)이 사진관 쇼윈도에 걸려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웃는다.  모습에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죽음이 결국 정원을 찾아 왔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2014년도 1학기에 들은 '문학과 인생' 수업의 과제로 냈던 글의 일부를 수정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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