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22 본문

out-put/뜬구름 잡기

22

biyo 2018. 10. 6. 01:00


canon eos 300v +


5학년 2 교실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기 무서워서 애꿎은 신발 주머니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다. 교실 안은 왁짜지껄하고, 활발하게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에게서는 형형색색의 빛깔이 쏟아져나온다. 뒤에 있는 내가 어쩐지회색으로 변해버린 같다……’


   같이 어울리던 가장 친했던 친구와 다투고 다음날, 나는 아이의 주도로 '왕따' 되어 있었다. 교실에 들어 서자 마자 느껴지던 적막함과 아이의 차가우면서도 빈정대는 듯한 눈빛에서 느꼈던 두려움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이후, 교실에서의 나는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회색 인간이었다.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가수들의 노래도 따라부르곤 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줄곧 받아왔기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받는무관심이라는 형벌을 통해 그동안의 관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 지를 느꼈다. 나는 외로웠고 회색이었으며 가벼운 존재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같다. 

   이상의 <날개> 읽으면 머릿속이 회색으로 가득 찬다. 밝지만 탁한 회색. 그래서인지 글을 읽으면 초등학교 5학년 전체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때가 떠오른다. 마음에 먹구름을 드리웠던 왕따 생활은 나를시킨 친구와 소위맞짱이라고 불리우는 몸싸움을 하고 뒤에 서서히 끝이 났다. 하지만 때의 먹구름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나는 그것을 떨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야 했다. 회색이었던 5학년이 끝나고 6학년이 되어 새로운 반에 들어가자 나는 나에게 색을 씌우고자 노력했다. 밝고 귀여운 친구, ‘노란색같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항상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봤고 그들의 감정을 미리 포착해내서 그에 맞는 행동이나 말로 친구들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나는 정말이지 관심을 갈구했다. 특히 또래 아이들로 부터의 관심을 말이다. 다행히 친구들은 점차 나를노란색으로 봐주었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나는 그것에 신이 나 친구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 이웃들도 나를 노란색으로 보도록 어디서든 항상 노란색을 연기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나는 항상 내가 아닌 남의 눈으로 나를 보았고 그들이 원하는 색으로 나를 칠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위에 덮어 씌운 여러 색들에 파묻혀서 회색 이전의 원래의 색이 무엇인지는 알록달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고등학생이 되자 원래의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 나에게 씌워 보았지만 고등학생이라는 사회적 지위 아래에서 내가 칠할 있는 색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막연히 대학교에 가면 많은 색을 칠해볼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에는 진짜 색을 찾게 것이라 믿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컴컴한 고등학교 생활이 지나가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앞에는 정말로 듣도 보도 못했던 다양한 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나는 눈이 뒤집혀서 이것 저것 나에게 칠해 보았다. 연애도 하고 대외활동이니 동아리니 소모임이니 학생회니……. 정말 끝이 없었다. 내가 칠할 있는 색은 무궁무진했고 나는 그것들을 빨리 나에게 칠해보지 못해 안달이 있었다. 그렇게 뭔가를 손에 쥐고 항상 바쁘게 살다보니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이젠 정말 무슨 색인지 모를 정도로 여러가지 색들이 위에 두텁게 쌓였다. 그런데도 아직 원래 색이 무엇이었는지, 나에게 정말 어울리는 색이 무슨 색인지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도 나만의 색을 찾지 못했다는 데에서 오는 좌절감이 나를 덮쳤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자라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 이상, <날개>

   

   구절은 나를 덮친 좌절감이 나에게 하는 말과 같았다. 또한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스물 해를 뒤돌아보며거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문장을 읽고 나니 차가워졌던 마음이 오월 햇살처럼 따뜻해졌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잘들도 생겼다. 작은놈은 작은놈대로 큰놈은 큰놈대로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이 따뜻하다. – 이상, <날개>


   주인공은 지금 높은 빌딩 꼭대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그곳을 연못이라고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금붕어에 비유하고 있다. 가까이에서가 아니라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세상엔 자기 나름대로의 모습 자체로 보기 좋은 사람들로 가득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연못에서 자신의 좌절감을 조금씩 씻어낸다. -연못에 비친 자신 또한 나름 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인공의 날개 돋았던 자국 위에 새로운 날개가 돋아나려하고 있음을 느끼 자신에게 말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번만 날자꾸나. 번만 날아 보자꾸나.’라고 말이다. 

   나의 잃어버린 날개는 무엇일까. 계속해서 나에게 물어 보았다. 오랜 생각 끝에 나는 나의 날개를 잃어버린 아니라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결론에 달았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관심을 얻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며 위에 색을 겹겹이 쌓는 동안 허영과 겉치레라는 몸집만 커져서자존감자율성이라는 쌍의 날개를 잊고 스스로타율성과 열등감이라는 열린 문의 새장 속으로 걸어 들어 갔던 것이다. 이제 나는 처음부터 열려 있었던 새장의 밖으로 빠져나와 <날개> 주인공처럼 다시 준비를 해야한다. 나에게 필요없는 색들은 깨끗이 벗어서 몸집을 가볍게 하고 자신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자신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게 잊고 있던 날개가 다시 펼쳐지고 나면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으로 훨훨 날아갈 있을 지도 모른다.



-


22살 때 썼던 글이다. 이젠 내가 스물 여섯이다. 이상,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과 동갑이 되었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설익은 밥 같다.



'out-put > 뜬구름 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없을 무  (0) 2018.10.29
‘가  (0) 2018.10.10
On a rainy night  (0) 2018.10.05
모기가 들어왔다  (0) 2018.10.05
도망쳐  (0) 2018.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