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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청을 만들다 문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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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청을 만들다 문득,

biyo 2018. 1. 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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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서 유자청을 만들었다. 매니저님이 고무장갑을 끼고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유자의 겉면을 굵은소금으로 박박 잘 닦아서 나에게 주면, 난 유자를 반으로 잘라 껍질과 과육을 분리했다.

사장님은 껍질을 칼로 채 썰고 나와 매니저님은 유자 과육에 들어있는 씨를 발라냈다. 유자 과육엔 귤이나 오렌지와는 달리 큼직큼직한 씨가 깍지콩처럼 들어있어 비닐장갑을 끼고 일일이 분리해야 했는데, 조금 귀찮긴 했지만 둘이서 잔뜩 수다 떨며 하니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속살만 남은 과육을 믹서로 살짝 갈아 채 썬 껍질과 함께 소독한 유리병에 설탕과 1:1 비율로 층층이 잘 넣고 일주일 정도 숙성 시키면 향긋하고 달콤한 유자청이 완성된다.

유자 20개 분량을 일일이 다듬고 손질하려니 힘들었지만 여자 셋이 힘을 합하니 명절 같은 기분이 들어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래서인지 유자청을 만들다 문득 ‘내 인생이 딱 이만큼이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딱 이만큼.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동네 친구들과 모여 가족들을 위한 반찬과 간식을 만들며 수다 떨고, 그것으로 행복한 삶 말이다.

우리의 교육과 미디어는 우리가 전근대적인 사고관, 가정관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아를 실현하며 넓은 세계로 나아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살 순 없다. 그걸 머리론 알고 있는데,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에 나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 종종 그 기대가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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