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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난한 사랑 노래

biyo 2013. 8. 6. 16:27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서는 시를 읽고 그 시를 바탕으로 자신이 상상해서 짧은 글을 써오라는 수행평가 과제를 내 주셨다. 그 때 썼던 짧은 글을 우연히 발견해서 이렇게 올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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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를 읽고 상상해서 쓴 

짧은 글 ' 나의 가난한 사랑 노래'



  추운 겨울, 이른 새벽부터 합숙소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잠을 깨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온통 푸른빛의 새벽 아닌 새벽. 남들에겐 한밤중이겠지만, 나에겐 새벽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빽빽이 들어서 있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피복 공장들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이 답답하고 어두컴컴한 닭장 같은 곳에서 일한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나간다. “쉬…….쉬익. 콜록 콜록콜록.......” 숨 쉴 때마다 쇳소리가 나고,탁하고 속이 아픈 기침을 한지도 한 달이 넘었다. 처음엔 감기라고 여겼던 것이 점점 심해져 폐병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에 휩싸이는 일이 많아졌다. 이대로 가다간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뒤흔들고 지나가자 이 공장에 오기 전, 그 때의 일들이 기억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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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도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피곤한 몸을 끌고 집을 나왔다. 덜덜 떨며 자전거를 끌고 인쇄소로 페달을 밟았다. 인쇄소에서 신문보따리를 받아들고, 자전거는 한쪽에 세워뒀다. 내가 매일 신문을 돌리는 구역은 달이 닿을 듯이 높은 달 동네였는데, 올라가야 할 울퉁불퉁하고 길게 꼬불꼬불 뻗은 계단을 올려다 볼 때마다 머리가 아찔하고 한 숨이 나왔다. 신문 돌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근육통 때문에 한참을 고생했었다. 난 그 전까지는 신문을 읽을 줄만 알았지 내가 직접 돌릴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었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진 우리 집은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우리 가족이 평안히 살 수 있을 정도의 형편은 되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처음으로 막내 삼촌과 벌인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고 병까지 얻게 되는 일이 생기면서 우리 집은 가난해졌다. 나는 그 전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부조리한 사회의 일을 고발하는 신문기자를 꿈꾸며 신문 방송과를 전공하고 있었고, 같은 과의 은옥이와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밝고 똑부러지는 성격의 은옥이는 언제나 나를 웃게 만들어 주는 정말 사랑스런 여자였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해서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미래도 꿈꿨었다. 하지만 늘 어깃장을 놓는 일은 있게 마련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우리가족은 길바닥으로 내몰릴 신세가 되었고, 게다가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 판정으로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미래를 위해 조금씩 저축해뒀던 돈도 모두 아버지의 빚을 갚는 데 써버려서 대학교 등록금으로 낼 돈도 없었다. 난 학교에 자퇴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서글픈 마음에 엉엉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서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난 그 길로 대학교에서 메고 다니던 가방에서 전공 서적들을 다 꺼내 팔고 그 가방에 나의 생필품들을 넣었다. 그리곤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엉엉 우시며 그저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병원 침대 위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지만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난 잠시 짐을 마당에 놓아두고 은옥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눈 쌓인 골목길 새파랗게 쏟아지는 달빛아래서 나는 은옥이에게 미안하다고, 난 서울로 떠나야 한다고, 다신 만날 수 없다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만은 차마 쳐다 볼 수 없었다. 그 눈을 보면, 그 목소리를 들으면 그녀를 보내지 못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내 볼에 작별의 키스를 남겼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때 마침 두 점을 알리는 소리와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은옥에게 잘 들어가라고 말한 뒤,

얼른 뒤돌아 걸어갔다. 그제야 내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돌아선 내 등 뒤에선 은옥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서 달래주고 싶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짐가방을 메고 집 밖으로 나왔다. 집 뒤 감나무의 새빨간 감잎이 바람에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으며 나는 가난 때문에 가족도, 고향도, 내 꿈도. 그리고 내 사랑도 모두 버리고 이 두렵고 외로운 곳에 오게 되었다. 그 기억에 눈물이 나오려고 해, 난 탁하고 속이 아픈 기침소리로 이 기억을 덮었다.



+


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법 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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