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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고양이

biyo 2019. 5. 16. 05:20

  앙고라토끼의 시야각은 약 350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서도 자기 뒤통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는 거다. 카페에서 일을 하면 앙고라토끼가 된다. 에스프레소를 템핑 하면서도 손님이 들어오는 걸 보고 '어서 오세요.'를 외치고,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몇 초 안에 컵에 얼음과 물을 담으며 입으로는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은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시야각이 넓어야지만 가능하다. 꼭 카페가 아니어도 서비스직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저절로 시야는 넓어지고 눈치가 빨라진다. 그런데 아무리 일을 해도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있다. 토끼들이 일하는 곳에 호랑이 한 마리가 들어온 셈이다. 육식동물은 시야가 좁다. 눈 앞에 있는 먹잇감을 노려야 하기 때문에 눈은 옆이 아닌 앞에 달리게 되며, 눈이 서로 가깝게 붙어 있게 되면 양쪽 시야가 겹치는 영역이 넓어지게 되기 때문에 입체감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반면에 토끼들이 보는 세상은 평면적이고 파노라마 사진기로 찍은 것처럼 세상이 휘어서 동그랗게 보인다. (아래 첨부한 영상을 보면 사람과 동물의 시야각 차이를 볼 수 있다. 앙고라토끼의 시야각은 1분 20초에 나온다.)  

  그런데 가끔 호랑이가 토끼들 위에 군림하게 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딱 그 토끼들 중 한 마리라 일을 하며 괴롭고 억울할 때가 많다. 뭐 이 사람은 호랑이까지는 아니고 고양이 정도 된다. 분명 우리 토끼들이 일을 더 열심히 잘하는데 이 고양이는 그때그때 자기 눈에 보이는 걸로 트집 잡고 토끼들을 못살게 군다. 고양이는 혼자 바쁘게 돌아다니지만 정작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해 토끼 된 입장으로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더 화가 나는 건 그 고양이는 스스로를 멋진 고양이라고 생각하며 토끼들보다 더 입체감 있는 눈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열심히 일하는 걸 인정받지 못해 괴롭다기보다는, 남에게 상처 주고 힘들게 하는 무례한 육식동물이 더 행복한 것 같아 억울한 게 날 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이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비유를 찾아낸 것도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 자체로 나쁜 사람이 된 것 같고 고양이에게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 화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다. 전형적인 앙고라토끼형 인간의 모습이다. 으휴, 그럼 이만 (깡) 총(깡)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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