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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와 소주, 비빔냉면과 쌀국수

biyo 2019. 2. 3. 03:44


50F, oil on canvas, 2016

“중심을 너 자신한테 둬야 해. 바깥에 중심을 두면 끝도 없다? 난 네가 꼭 뭔가 이룰 거라고 믿어. 혼란할 때일수록 이제 해야 할 건 바깥에 두고 있는 중심들을 다 깡그리 모아서 집어치우고 네가 뭐가 옳고 그르다고 느끼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해.” 스물일곱 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꿈을 모르는 스스로가 한심했던 내게 혀가 꼬부라진 사장님이 말했다. 꼰대 같은 말이라고, 당신은 이미 성공한 사업장을 가졌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지만 어쨌든 ‘네가 꼭 뭔가 이룰 거라고 믿어.’라는 말이 너무 고마워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소주를 한 잔 나눴을 뿐인데 나의 요즘 고민을 꽤 뚫어보는 그 말에 조금 동요하기도 했다. 요 몇 개월 나는 잠들기 전 항상 나 자신을 미워했다. 너는 지금 스물일곱 살인데 제대로 된 커리어나 스펙도 하나 없고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니? 이렇게 게으르기만 해서 뭘 어쩌자는 거야. 그렇게 나를 혼내고 나면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너무 삶이 막막하고 답답해서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고 숨이 턱 밑까지 차서 저절로 눈물이 찔끔 흘러나오는 채로, 이렇게 잠이 들면 그냥 죽어버릴 거라고 나 자신에게 말한 후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눈을 뜨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머릿속이 그나마 덜 시끄러웠다. 살고 있는 매 순간이 고마운데 괴로워서 머릿니가 된 것 같았다. 지금은 맛있는 피를 빨며 습한 두피에 붙어살고 있지만 결국엔 생활에 가려움을 느낀 세상이 나를 알아차릴 것이고 촘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 보면 잘잘못이 확실히 보이고 결국 나는 손톱에 짓이겨져 죽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했다. 남에게 눌려 죽을 바엔 내가 나를 죽이자는 마음이 매일매일 커졌다. 괴로운 밤이 조금이나마 편해진 건 내가 스스로에게 ‘넌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네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해?’라고 말한 순간부터였다. 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내고 밥을 먹고 친구와 술 한잔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스물다섯이 넘어가면 대부분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멋지지 않은 건 아니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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